나는 우울증에 걸렸다고 했다

집단에서 나를 표현할 때 으레 들어가는 말이 있다.

이성적인, 피도 눈물도 없는(ㅋㅋ), 유쾌한, 성격이 밝은, 편한 등등.

그래서 나는, 아무튼 저렇게 평가된 나는 우울증이라는 것과 아주아주 거리가 멀 줄 알았다. 

(그 평가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느정도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우울증은 

감성적이고, 잘 휘둘리고, 심지가 굳지 못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꽤 여러번 우울증에 걸리고, 자주 우울감이 찾아오던 경험을 겪었는데도

그게 우울증과 관련돼 있을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거나 하는 데에 부담을 느껴서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그게 우울증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진짜 몰랐음)

 

이따금씩 외로움이나 허무함같은 기분들이 찾아와도

어떻게든 영차영차 이겨내고 지금까지 잘 지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대중매체에서 묘사되는 우울증은 보통 아주 심각한 상태만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 둘을 연결시켜서 생각하지 못했던 걸수도 있고ㅋㅋ

 

 

그래서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나 스스로 받아들였을 때

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댈 수 있는 근사한 핑계거리가 생겨서.

평소의 똑부러진 내가 아니라 아무것도 못하고 집 안에만 있는(절대 히키코모리 욕이 아님),

내가 싫어하던 모습의 나를 대변할 변호인을 찾은 기분이었다.

 

아무튼 이건 몇 주 전 얘기고, 지금은 상담치료를 다니고 있다.

처음 간 날은 아주 개쩔게 펑펑 울었다. 

내 아픈 기억들을 굳이 말로 꺼내서 되새김질 하는건 굉장히 슬픈 일이었지만

편파적으로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정리가 되면서 잊고 있던 걸 깨닫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인상적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감정도 정리가 되는 기분이고ㅋㅋ

 

 

블로그에 이 얘기를 적어볼지 말지도 계속 고민했는데

(처음엔 정말 아무도 안왔는데 이제 공개 일기장이 돼버려서..)

일단 저지르고 나중에 이불팡팡차게되면 그때 비공개로 돌리기로 했다.ㅎㅎ

다음 글에는 어떻게 상담을 받기로 결정했는지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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